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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허생전·호질 외:연암 박지원 소설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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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兩班傳·許生傳·虎叱 外
- 옮긴이/역자: 이명현
- 그린이: 한동훈
- ISBN: 9791139731644
- 발행언어: 한국어
- 쿠팡상품번호: 9533478384 - 28432519524
필수 표기 정보
| 도서명 | 양반전·허생전·호질 외: 현대지성 클래식 74 | 저자, 출판사 | 박지원, 현대지성 |
| 크기(파일의 용량) | 150*225*15 mm | 쪽수 | 224 쪽 |
| 제품 구성 | 책1권 | 발행일 | 2026-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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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읽으면서 웃었다. 덮고 나서야 알았다. 내 얘기였다는 걸.”
연암의 소설은 풍자로 시작해 인간의 민낯으로 끝난다
★ 교과서 속 고전이 아니라, 지금의 인간과 사회를 해부하는 연암 소설 10편 완역
★ 풍속화·궁중기록화·민화·현대 일러스트 29점 컬러 수록
★ 아들 박종채의 기록과 상세 각주로 작품 너머 ‘인간 박지원’까지 입체적으로 복원
교과서 속 연암은 대개 ‘실학자이자 풍자 소설가’라는 단정한 설명으로 지나간다. 그러나 실제의 박지원은 훨씬 더 생생하고, 훨씬 더 위험하고, 훨씬 더 오늘에 가까운 작가다. 그는 18세기 조선을 쓴 것이 아니라, 체면과 허세, 공허한 권위와 행동 없는 지식인을 집요하게 해부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고전으로 남지 않고, 지금도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양반전」에서 한 부자는 양반 신분을 사놓고, 그 실체를 알고는 겁을 먹고 달아난다. 「호질」에서는 도덕군자인 척하던 유학자가 호랑이 앞에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허생전」에서는 세상을 뒤흔들 만한 통찰을 가진 인물이 끝내 구조 전체를 바꾸지 못한 채 돌아선다. 이야기의 배경은 조선이지만, 읽다 보면 자꾸 지금의 장면이 겹쳐진다. 실력보다 간판이 먼저 통하고, 책임보다 명분이 앞서며, 허울이 알맹이인 양 유통되는 사회. 양반제도는 사라졌지만, 양반의 얼굴은 형태만 바꾼 채 아직도 살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250년 전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지금 우리의 현실을 정면으로 읽게 만든다.
양반제도는 사라졌지만, 양반의 얼굴은 아직 남아 있다
18세기 조선을 넘어 오늘의 인간과 사회를 해부하는 연암 소설 결정판
현대지성 클래식 『양반전·허생전·호질 외』는 바로 그 현재성을 가장 입체적으로 되살린 판본이다. 학계가 공인한 박지원 소설 10편을 한 권에 담고, 텍스트만으로는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세계를 29점의 컬러 이미지로 눈앞에 끌어온다. 풍속화·궁중기록화·민화·현대 일러스트가 어우러져, 독자는 텍스트를 따라가는 데서 멈추지 않고 18세기 조선의 장면 속으로 직접 들어가게 된다. 어린이용 컬러판과 어른용 텍스트북 사이에서, 250년 전의 조선 시대를 오롯이 느껴보고 싶은 어른 독자들을 위한 컬러 정본이다.
또 다른 강점은 작품 바깥의 박지원까지 함께 읽게 한다는 데 있다. 기존에 한데 묶여 있던 작가의 자서를 각 작품 앞에 되돌려 배치하고, 말미에는 아들 박종채의 기록을 실었다. 덕분에 독자는 이야기 한 편과 함께 박지원이 왜 이런 인물을 불러냈는지, 무엇에 분노했고 무엇을 부끄러워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 이런 문장을 쓰게 되었는지까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이 책은 작품만 모아놓은 선집이 아니라, 문장 뒤에 숨어 있던 ‘인간 박지원’까지 다시 불러내는 글이기도 하다.
낯선 시대를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장치도 촘촘하다. 연암의 문장은 날카롭고 빠르지만, 배경지식이 없으면 그 속도가 자주 끊긴다. 이 책은 풍속과 제도, 인물과 표현의 맥락을 짚는 418개의 각주를 통해 그 단절을 메운다. 덕분에 독자는 연암의 비웃음과 통찰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학생 시절 제목만 외웠던 독자에게는 다시 읽는 즐거움을, 한국 고전을 처음 제대로 읽는 독자에게는 가장 친절하면서도 깊이 있는 입문서 역할을 한다.
정조가 문체반정까지 단행하며 경계했던 연암 박지원의 문장, 조선의 체면과 위선을 웃음으로 해부한 그 문장들을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한번 읽어보자.
목차
양반전
민옹전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마장전
우상전
김신선전
「방경각외전」에 수록된 소설 중 원문이 유실된 작품 2편의 자서
허생전
호질
열녀함양박씨전
해설 | 이명현
박지원 연보
저자 소개
지은이 ∥ 박지원 (朴趾源, 1737-1805년)
호는 연암(燕巖).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문체로 시대를 앞서간 작가이자,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거두이다.
한양 노론의 명문가 자제로 태어나, 양반 사회 한복판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양반 계급의 위선과 허위를 통렬히 비판했다. 청년 시절부터 정파 갈등에 시달리며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던 그를 살린 것은, 권력도 약도 아닌 저잣거리의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였다. 형식에 맞춘 문장으로 고고한 이상을 읊조리던 시대에, 연암은 사회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이웃들과 어울리며 인간 세상을 깊숙이 탐구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선보인 독보적인 소설의 씨앗이 되었다.
연암은 박제가, 이덕무 등과 함께 변화를 주장하는 북학파를 이끌었으나, 절친한 벗 이희천이 왕실의 불합리한 결정으로 참혹한 죽음을 당하자 큰 충격을 받고 은거했다.
야인의 삶을 택했지만 그의 문장은 세상을 더욱 강렬히 뒤흔들었다. 청나라 사신단에 동행하며 새로운 시각을 담은 기행문 『열하일기』는 집필 도중 필사본으로 퍼져나가며 젊은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다. 정조 임금이 문체와 사고방식을 물들인 주범으로 ‘연암체’를 지목하고 문체반정을 단행할 만큼, 그의 목소리는 온 나라에 쟁쟁히 울려 퍼졌다.
훗날 생활고와 정조의 부름으로 관직에 나아간 뒤에도 연암은 평온한 삶에 안주하지 않았다.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할 방안을 궁리하고, 사비로 굶주린 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는 청빈한 삶을 살았다.
연암의 문장이 25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살아남은 까닭은 분명하다. 그가 비웃은 것은 지나간 조선의 한 계층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허세와 위선,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는 지식의 공허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고전으로 머물지 않는다. 읽는 순간, 우리는 18세기 조선을 지나 끝내 지금 우리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옮긴이 ∥ 이명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고전문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모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흥미로운 고전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고전문학은 연구실에 박제된 화석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 역자는 현대적 시각에서 고전문학을 비평적으로 해석하는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으며, 고전문학의 가치를 확장하고자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 ‘생성 AI와 고전문학’, ‘고전서사와 서브컬처’ 등으로 연구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쓴 책으로 『유씨전 연구』, 『우리 이야기와 문화콘텐츠』(공저), 『고전서사와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동화 스토리텔링』(공저), 『고전서사와 웹툰 스토리텔링』(공저), 『생성 AI 시대의 고전문학』(공저) 등이 있다.
그린이 ∥ 한동훈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뒤 단행본·전집·교과서에 그림을 그려왔고 기업과 공공기관의 광고 프로젝트도 다수 진행했다. 그린 책으로 『큰발의 산』을 비롯해 『수호지』, 『임진록』, 『흠흠신서』, 『그리스 로마 신화』, 『처음 세계사』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세상은 권세와 이익만을 좇아 벗을 사귄다. 일찍부터 이런 꼴불견을 증오했던 아버지는 아홉 편의 글을 지어 세태를 풍자했다.
- 박종채, 『과정록』(過庭錄) 제1권 13 (7쪽)
선비란 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요, 선비의 마음이 곧 뜻이라네. 그 뜻은 어떠한가. 권세와 잇속을 멀리해 높고 귀하게 되어도 선비 본색 떠나지 않고, 궁핍해도 선비 본색을 잃지 않네. 이름과 절개를 닦지 않고 가문과 지체를 기회로 삼아 조상의 덕만 사고판다면 장사치와 뭐가 다를까. 이에 양반전을 짓는다.
- 양반전 (11쪽)
“이 세상에서 양반인 것보다 더 큰 이로움은 없다. 밭을 갈지도 않고 장사를 하지 않아도 옛글이나 역사를 대략만 알면 과거를 치를 수 있는데, 크게는 문과에 오르며 적어도 진사는 될 수 있다. 문과 홍패(紅牌)는 두 자도 채 못 되지만, 그것으로 온갖 것을 갖출 수 있으니 돈 자루나 다름없다. (…) 수령 노릇을 하면 일산(日傘) 아래 산들바람 쐬니 귀가 하얗고, 배는 아랫사람들의 ‘예, 예’ 하는 대답 소리에 살이 찐다. 방 안에서는 치장한 기생을 희롱하고, 뜰에서는 곡식을 쌓아 학을 기른다. 비록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아도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웃집 소를 끌어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마을 백성을 잡아내어 내 밭에서 김을 매도록 시키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거역하랴. 잿물을 코에 들이붓고 상투를 잡아매고 수염을 뽑더라도 감히 원망하지 못하리라.”
부자는 그 문서가 반쯤 되어가자 혀를 내둘렀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참으로 맹랑한 일이요. 장차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려 하시는 겁니까?”
그러고는 머리를 흔들면서 가버렸다. 그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양반’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 양반전 (21쪽)
“엄행수는 똥을 지고 거름을 나르며 먹고사니 불결하다 하겠으나, 그가 밥벌이하는 수단을 따져보자면 지극히 향기로운 일이지. 행색은 비록 비루하고 더럽지만 의로움을 지키는 자세는 가장 꿋꿋하니, 그 뜻을 헤아린다면 온갖 녹봉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네. 이로써 미루어 본다면 깨끗한 가운데 불결한 것이 있고 더러운 가운데 청결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될 거야. (…) 아마 엄행수를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드물 거야. 그래서 나는 엄행수를 선생으로 모신다고 한 걸세. 어찌 주제넘게 벗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같은 이유로 나는 엄행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그에게 ‘예덕선생’이란 칭호를 바쳤다네.”
- 예덕선생전 (63쪽)
자네는 다른 사람을 사귈 때, 첫째, 상대가 이미 잘한 것을 칭찬하지 말게. 그러면 상대가 이미 싫증을 느껴 효과가 없을 테니까. 둘째,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깨우쳐주지 말게. 그가 앞으로 그 일을 행해서 알게 된다면 크게 낙심한 나머지 허탈해할 테니까. 셋째,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어느 한 사람을 ‘제일’이라고 칭찬하지 말게. ‘제일’은 그 위에 더 나은 사람이 없다는 뜻이니만큼, 그 자리의 다른 이들이 침울해지고 기운이 떨어질 테니까.
그러므로 벗을 사귀는 데는 다 방법이 있는 거야. 첫째, 상대방을 칭찬하려거든 겉으로는 책망하는 것이 좋고, 둘째, 기쁨을 보여주려면 먼저 성난 표정을 드러내야 하네. 셋째, 상대방과 친해지려거든 뚫어질 듯 쳐다보다가 부끄러운 듯 돌아서야 하고, 넷째, 상대방이 나를 꼭 믿게끔 하려거든 의심하게 만들어놓고 기다려야 하네. 다섯째, 지조 있는 선비는 슬픔이 많고 미인은 눈물이 많은데, 영웅이 잘 우는 까닭은 남을 감동시키려 들기 때문이지.
- 마장전 (70-71쪽)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해도 친한 사이가 아니요, 어깨를 치며 소매를 끈다고 해도 반드시 마음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도 틈이 있기 마련이다.
- 마장전 (73-74쪽)
옛 문장을 배우려는 자는 가닥마다 자연스러움을 구해야 마땅하며, 자기 문장이 살아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옛사람의 언어를 표절해서 정해진 틀에 메우면 안 된다. 바로 여기서 글이 어려운지 쉬운지가 판가름 나고, 참과 거짓이 결정된다.
- 박종채, 『과정록』 제4권 3 (101쪽)
“만약 내가 부자가 되려 했다면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이제부터 난 당신의 도움을 받아 살겠소이다. 당신이 가끔씩 와서 호구(糊口)를 살펴 양식을 대주고 옷감이나 내준다면 일평생 그걸로 족할 테지요. 어찌 재물로써 마음을 괴롭히겠소?”
변 씨가 허생을 백방으로 설득했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변 씨는 이로부터 허생의 살림살이가 궁핍해질 무렵이면 필요한 물건을 구해서 직접 가져다주었다. 허생은 흔쾌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허허, 내게 재앙을 보내면 어떻게 하오?”
그러나 술을 가지고 가면 크게 기뻐하면서 서로 권하며 취하도록 마시니, 그렇게 몇 해를 지내는 동안 둘은 날로 정이 두터워졌다.
- 허생전 (137쪽)
너희는 이치를 말하고 본성을 논하면서 걸핏하면 하늘을 일컫지만, 하늘이 정한 이치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동물인 건 매한가지다.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이치로 논하더라도 범과 메뚜기, 누에와 벌, 개미와 사람이 모두 함께 길러졌으므로, 서로 도리에 벗어난 짓을 할 수는 없다. 또 그 선악을 따지더라도 뻔뻔스럽게 벌과 개미의 집을 노략질하고 긁어가는 놈이야말로 천지의 큰 도둑이 아니며, 함부로 메뚜기와 누에의 살림을 빼앗고 훔쳐가는 놈이야말로 인의(仁義)의 큰 적이 아니겠느냐?
- 호질 (173-174쪽)
아버지의 문장 중에는 가식적인 데다 명성을 훔치기까지 한 유학자들을 꾸짖은 내용이 더러 있다 보니 간혹 화를 내며 불평하는 자가 있다. 그러자 유충문 공이 말했다.
“이 친구는 단지 가짜 유학자의 행태에 격분해서 그들을 나무랐을 뿐이야. 나는 그대들이 걸핏하면 열을 내면서 가짜 유학자들 대신 분노를 터뜨리는 게 몹시 이상하다네.”
- 박종채, 『과정록』 제4권 6 (181쪽)
출판사 리뷰
250년 전 연암이 비웃은 얼굴, 오늘도 낯설지 않다 우리는 「양반전」, 「허생전」, 「호질」이라는 제목을 안다. 하지만 연암의 소설은 제목만 알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생생하다. 양반 신분을 사놓고 그 실체를 알고는 겁을 먹고 달아나는 부자, 도덕군자인 척하다가 호랑이 앞에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유학자, 세상을 읽는 눈은 탁월하지만 끝내 구조 전체를 바꾸지 못하는 지식인. 이 인물들은 조선 후기의 낯선 등장인물이 아니라, 오늘의 회의실에서도, 조직 안에서도, 어쩌면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타이틀은 탐내지만 그 무게는 지기 싫어하는 사람, 정의를 말하지만 자기 욕망 앞에서는 누구보다 초라해지는 사람, 세상을 꿰뚫어 볼 만큼 똑똑하지만 끝내 현실은 바꾸지 못하는 사람. 연암의 소설이 250년이 지난 지금도 힘을 잃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꿰뚫어본 것은 조선이라는 시대가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인간의 허위와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연암이 벗겨낸 것은 양반이 아니라 인간의 허위였다 정민 교수는 연암의 문장을 두고 “한 군데 못질한 흔적이 없는데도 꽉 짜여져 빈틈이 없다. 그의 글은 난공불락의 성채다”라고 평했다. 「양반전」은 그 칼날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빚을 갚기 위해 양반 신분을 파는 가난한 양반, 그리고 그것을 사들인 뒤 증서 속 ‘양반의 삶’을 읽다가 질겁하고 물러서는 부자.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연암은 신분제 자체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권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소비되며, 사람들은 왜 그 허울에 기꺼이 매달리는지를 정밀하게 해부한다. 양반제도는 사라졌지만, 양반의 얼굴은 형태만 바꾼 채 여전히 살아 있다. 「허생전」은 다른 방향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허생은 무능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단돈 만 냥으로 시장을 흔들고, 국가 경제의 허점을 간파할 만큼 뛰어난 통찰을 지녔다. 그런데도 그의 능력은 끝내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연암은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썩은 구조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지탱하는 것이 결국 명분과 체면, 권위의 허상이라는 점까지 함께 드러낸다. 「호질」에서는 그 체면이 가장 극적으로 무너진다. 도덕을 입에 달고 살던 유학자가 사실은 욕망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이었음이 드러나고, 그는 호랑이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우습다. 그런데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장면이 지나치게 낯익기 때문이다. 연암은 이 작품에서 조선을 풍자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인간 전체를 겨냥한다. 세 작품는 길지 않다. 하지만 짧다고 가볍지는 않다. 타이틀 하나에 사람이 왜 쉽게 흔들리는지, 이름뿐인 권위가 왜 실력보다 먼저 먹히는지, 허위라는 걸 알면서도 사회는 왜 그 가면을 계속 떠받드는지, 연암은 몇 장 안 되는 이야기 속에서 그 민낯을 순식간에 들춰낸다. 책을 덮고 나면 문득 남 얘기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체면과 허위가 한 겹씩 벗겨지고 나서야, 한 사람의 진짜 알맹이가 무엇인지 묻게 되기 때문이다. 연암의 소설은 바로 그 질문을 독자 마음속에 오래 남긴다. 문장은 차갑게, 삶은 뜨겁게 연암의 문장을 만든 것은 연암의 삶이었다 박지원이라는 이름은 익숙하다. 실학자, 천재 문인, 북학파의 수장. 그러나 그 몇 단어만으로는 지금까지도 독자를 멈칫하게 만드는 그의 예리한 문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연암은 한양 노론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지배층이 당연하게 여기는 질서를 끝까지 의심한 사람이었다. 그 시선은 사회가 비천하게 여기는 똥거름장수를 ‘선생’이라 부르고, 양반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허세와 욕망을 끝까지 파헤치게 했다. 청나라 사신단에 동행한 후 쓴 『열하일기』는 집필 단계부터 필사본으로 퍼져나가며 조선 지식사회를 뒤흔들었다. 몰락한 명나라에 대한 의리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던 시대에, 연암은 청의 발전을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조가 그의 문체를 지목해 문체반정을 단행한 것도 그 문장이 시대의 질서를 흔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연암의 문장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작품 바깥의 삶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그의 차가운 문장 뒤에는 뜨거운 삶이 있었다. 그는 세상의 모순을 익숙한 풍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조의 부름으로 늦은 나이에 관직에 나아가 자신이 주장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의 뜻을 실천하려 했다. 굶주리는 백성을 사비로 구제했고, 아내와 사별한 뒤에는 손수 반찬을 만들어 자식들을 먹였으며, 삶을 마무리할 시점에는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라 당부했다. 조선도 양반 계급도 아닌 인간 자체를 꿰뚫은 그의 문장은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현실과 맞부딪치며 살아낸 사람이기에 인간과 사회의 민낯을 이토록 정확히 그려낼 수 있었다. 웃음으로 시작해 우리의 민낯과 대면하다 연암을 다시 읽게 만드는 결정판 현대지성 클래식은 현실을 꿰뚫는 연암 소설의 힘을 가장 입체적으로 복원하고, 연암을 새롭게 읽는 방식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연암 이전에는 어디서도 본 적 없었던 독보적인 소설의 근원이 된 그의 삶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에 공을 들였다. 기존에 한자리에 묶어 수록했던 작가의 서문을 각 작품 앞에 배치하고, 말미에는 아들 박종채가 기록한 박지원의 모습을 함께 실었다.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연암이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살았는지, 왜 이런 문장을 썼는지 그 배경까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낯선 시대의 장벽 앞에서 독자의 호흡이 끊기지 않도록 풍속과 제도, 인물과 표현의 맥락을 짚는 418개의 각주를 촘촘히 달았다. 또한 풍속화·궁중기록화·민화, 연암이 직접 그린 그림과 현대 일러스트까지 담은 29점의 이미지는 문장으로만 머물던 조선 후기의 풍경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되살린다. 웃으며 읽기 시작한 연암의 문장은 어느 순간 우리를 멈춰 세운다. 그가 해부한 것은 250년 전 조선의 낡은 제도가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작동하는 인간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간판이 권력이 되고, 허세가 권위를 대신하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래서 연암의 소설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그려낸 인간과 사회의 구조는 지금도 새로운 양반의 얼굴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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